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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노예교육에 저항 … 식민통치 문제, 민족독립, 민족해방 제기한 총체적 민족운동 (2019년 4월 2일 국가보훈처 나라사랑신문)
작성자 운영자
작성일 2019/04/09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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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한 광주학생들의 시위대열 광주역 충돌 사건을 다룬 당시 기사.
   
1929년 11월 6일 동아일보 신문에 실린 광주학생독립운동 기사.
   
광주학생독립운동을 다룬 영화 ‘이름없는 별들(1959)’에서 양림교를 건너는 시위 대열을 재연한 모습.

일제의 한인 교육은 식민지 교육이었다. 식민지 교육의 목적이 식민 지배의 하수인을 만드는 것이었으므로, 일제는 학교교육을 철저히 통제하며 식민지 노예교육을 실시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교육환경에서 한일 학생의 차별대우를 통해 일인 학생의 우월감과 한인 학생의 열등감을 조장하기도 했다.

일제 식민통치의 억압성은 일상생활의 전 부문에 걸친 것이었으나, 그중에서도 교육상의 민족적 불평등은 한일인의 차별대우를 가장 잘 보여주는 두드러진 현상이었다. 이는 한일 학생들이 외형적인 조건에서 가장 선명하게 대비되는 비교집단이기 때문이다.

결국 학교는 일제 식민정책의 특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장소였던 것이다. 학생들은 식민지 교육이라는 학습상황에 공통적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반면 학생들은 상시적인 접촉으로 의견 결집이 용이한 집단 특성이 있었다. 이는 학생들이 경험의 공유를 통해 식민지교육에 대한 반감을 증폭시켜갈 수 있는 조건이 됐다. 그 결과 일제의 식민지 교육에 대한 학생들의 항쟁의식은 갈수록 높아갔다.

3·1운동과 학생

이러한 학생의 집단적 저항의식은 일제시기 3대 민족운동이라고 하는 3·1운동, 6·10만세운동, 광주학생운동에서 주도적으로 표출됐다. 1919년 당시에는 일본 유학생들이 2·8독립선언을 통해 국내 3·1독립선언의 촉매제 역할을 했다. 국내에서는 전문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학생단을 조직하고 독자적인 독립선언을 추진했다.

천도교, 기독교, 불교계의 주요 인사들이 독립선언을 준비하자, 이에 합류하여 독립선언서 배부와 시위운동을 담당했다. 3월 1일 예정을 바꿔 민족대표가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을 하자 서울 탑골공원에서 군중들 앞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시위행진을 주도한 것도 학생이었다. 3월 1일 탑골공원에서의 독립선언식과 시위는 이후 전국적인 시위의 전형이 됐다. 3월 5일 남대문역 앞에서의 만세시위도 학생들을 중심으로 추진된 것이었다.

이러한 학생들의 주도적인 저항이 없었다면 서울의 3·1운동은 태화관의 독립선언으로 그쳤을지도 모른다. 만세시위의 전국적인 확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후의 전국적인 시위에도 학생들은 적극적으로 참여해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시위현장을 선도하는 등 주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당시의 학생들은 민족지성으로서의 자부심과 책임감이 높았다. 이에 비해 학생 자체의 독자적인 세력화는 아직 미약한 상태였다. 이후 1920년대 조선학생대회, 조선학생회, 조선학생과학연구회 등의 학생운동 조직을 결성하면서 학생들의 사회의식은 더욱 성장해갔다.

6·10만세운동, 만세시위를 주도하다

1926년에는 융희황제(순종)의 인산(장례)을 계기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비롯해 천도교, 조선공산당 등을 중심으로 만세시위가 추진됐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은 일제에 포착되어 관련자들이 사전에 체포되고 말았다.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때 이를 이어 만세시위를 추진한 것도 학생들이었다.

조선학생과학연구회의 학생들은 비밀리에 격문을 인쇄해 각 학교와 지방에 배포했다. 6월 10일의 인산 당일에는 전문학교와 중등학교 학생들이 서울 시내 곳곳에서 만세시위를 벌였다. 일반인의 참여가 거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군중들에게 격문을 뿌리고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 만세’를 높이 불렀다. 혈서로 ‘독립만세’라 쓴 태극기를 들고 시위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날 체포된 학생만 200여 명에 달했다.

6·10만세운동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조선공산당, 천도교 등이 좌우익 이념의 차이를 초월해 추진한 독립운동이었다. 기성 사회인들이 계획했으나, 이를 실행에 옮긴 것은 학생이었다. 6·10만세운동은 이후 독립운동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중국의 국공합작 등의 정세와 맞물려 해외 독립운동계에 민족대당결성운동을 촉진했다. 그 결실이 국내에서 좌우익의 연합전선체인 신간회 결성으로 나타났다.

학생, 민족운동의 선두에 서다

6·10만세운동 이후 학생들은 우리 독립운동계의 주요세력으로 발돋움했다. 학생 수도 크게 증가했다. 1919년 당시 8만 6,000여 명에 불과하던 학생 수가 1929년에는 50만 여명으로 늘어났다. 종래 학생조직은 서울의 합법적 결사에 머물렀으나, 1920년대 후반에 들면 사회과학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비밀결사가 전국적으로 결성되었다. 학생들의 식민지현실에 대한 사회인식도 더욱 심화되어 갔고 동맹휴학이 질적 양적으로 크게 증가했다.

학생들은 동맹휴학을 통해 ‘조선인 본위의 교육’을 요구하며 식민지교육에 항거했다. ‘조선인 본위의 교육’은 식민지인 양성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교육 당사자인 한인 학생을 본위로 한 교육을 말한다. ‘조선인 본위의 교육’은 학생이 재학 중인 개별 학교가 아니라 일제 당국에 대한 요구였으므로 일제 식민체제에 대한 거부를 의미했다. 1929년의 광주학생운동은 이러한 학생운동 성장의 결정체였다.

   
나주역 구 역사 전경.

나주에서 한일 학생의 사소한 충돌을 계기로 1929년 11월 3일 광주 역전에서 한일 학생 간에 격투가 벌어졌다. 이어서 광주고보, 광주농업학교, 전남사범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가두시위가 전개됐다. 일제는 이를 처리하면서 한인 학생들만을 편파적으로 검거하여 한인 학생에 대한 차별대우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에 항의하여 11월 12일 광주에서 2차 시위가 일어났다. 이후 광주 검거학생의 석방과 식민지교육의 철폐 등을 요구하며 동조시위가 확산됐다.

   
광주 학생독립운동기념탑.

광주에서 촉발돼 11월 전남지방으로 확산되던 시위운동은 12월 초 서울로 전이되면서 전국적인 양상으로 발전했다. 서울에서는 12월 5일부터 16일까지 남녀 전문학교와 중등학교를 비롯해 각종학교, 보통학교 등 모두 30개의 학교에서 1만2,000여 명의 학생들이 시위 또는 맹휴를 전개했다. 이로 인해 총 1천4,000여 명의 학생이 검거됐다. 서울의 거의 모든 중등학교 학생들이 참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의 학생 시위를 계기로 동조활동은 전국의 주요도시로 확산됐다. 개성, 인천을 비롯해 평양, 원산, 함흥, 경성, 춘천 등 경의, 경원선 철도 연변의 대도시로 확산됐다.

한편 신간회 본부는 광주학생사건의 진상을 알리고 이를 민중 시위운동으로 전환하기 위해 민중대회 개최를 추진했다. 신간회 내의 민족주의 계열 인사들이 중심이 된 이 계획은 사회주의계와 학생의 배제, 사전 준비 소홀, 일제의 사전 검거 등으로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그러나 신간회 본부 차원에서의 시위운동 계획은 이후 전국 확산과정에서 신간회 지회 회원의 활발한 참여를 이끌어내는 동인으로 작용했다.

1930년 1월초 3학기 개학과 더불어 광주학생에 호응한 시위운동은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고등보통학교, 실업학교, 실업보습학교, 각종학교, 보통학교 등 각급 학교에서 시위운동이 전개되었다. 지역도 주요도시 뿐 아니라 전국의 시.군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학생들은 “광주학생 석방 만세” 와 더불어 “대한독립 만세” “피압박 민족 해방 만세” “약소민족 해방 만세” “제국주의 타도 만세” 등의 구호를 외쳤다.

처음 사소한 충돌에서 출발한 광주학생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항일독립운동으로 발전한 것이다. 지역의 신간회 지회원이나 청년동맹원들이 직접 시위를 추진하거나 학생들의 시위운동을 지도하는 경우도 많았다. 1929년 12월부터 1930년 2월말까지 국내외에서 최소한 280여 개 이상의 학교와 5만4,000여 명 이상의 학생들이 참여했다.

국내의 학생운동은 국외로 파급되면서 각지의 민족운동 세력에 의해 새로운 운동력으로 전환됐다. 중국 관내지역에서는 이를 계기로 유일당건설운동이 다시 논의됐다. 간도에서는 반제국주의공동전선을 결성하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간도의 한인 학교에서는 직접적인 동조시위로 국내의 운동에 호응했다. 미주의 한인사회는 공동회를 조직하여 국내 학생들을 지원하면서 20년대 후반의 침체를 벗어나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광주학생운동은 운동의 주체가 학생이었으나 학내문제에 그치지 않고 식민지 교육문제, 일제 식민통치문제, 민족독립, 민족해방 등을 제기한 총체적 민족운동이었다. 또한 학생이 민족운동의 선두에서 주체적으로 활동한 학생역량의 최고점을 보여준 운동이었다.

일제시기의 학생은 우리 민족의 질곡을 직시하며 해결방안을 고민하던 지성인이었다. 이들은 우리 민족운동사의 변곡점에서 스스로 주요한 동력으로 활동하는가 하면, 인적자원의 저수지 역할도 했다.

학생은 존재의 특성상 지속성이 떨어지는 반면 늘 새로운 인원이 충원되며 활력을 잃지 않는 존재이기도 하다. 어느 사회에서나 학생들은 특유의 집단성과 감성을 바탕으로 사회모순에 저항한다. 그것이 때로는 현실적이지 못한 선택일지라도, 그들의 항거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다. 학생들은 부패하지 않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학생들은 순수한 열정과 헌신으로 다시 4·19혁명과 민주화운동의 주역이 되었다. 앞으로도 학생들은 우리 사회를 정화시키는 소금이 될 것이다.

김성민 / 문학박사, 한국사

   

지난해 11월 3일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첫 정부기념행사로 열린 제89주년 학생독립운동기념일 행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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